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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해력 장영남 “현실감 있는 연기란 말에 힘 나···‘비밀일 수밖에’ 주인공은 ‘궁금한’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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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또또링2 댓글 0건 조회 4회 작성일 25-09-11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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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해력 배우 장영남(52)은 오래 끓인 속을 짐작하게 하는 연기를 한다. tvN 드라마 <미지의 서울>의 쌍둥이 미지·미래의 엄마 옥희는 다정한 말 하나 않는 억척스러운 엄마지만, 장영남은 딸들에 대한 옥희의 은은한 걱정과 애정을 눈빛만으로 전했다. 감정에 동화되게 하는 힘도 대단하다. 2001년 홍제동 화재 참사 사건을 다룬 영화 <소방관>(2024)에 몰입을 더 했던 건 현장에 출동한 소방관의 아내로 분해 기다리는 가족의 초조함을 전달한 그의 연기였다.
오는 10일 개봉하는 영화 <비밀일 수밖에>(김대환 감독)는 장영남이 그려낸 인물을 더 긴 호흡으로 볼 수 있는 기회다. 매체 연기로는 누군가의 엄마나 아내로 조연 역할이 많았던 그가 이번에는 ‘서사의 주연’인 엄마, 정하를 연기한다.
캐나다에 유학 간 아들 진우(류경수)가 불현듯 여자친구 제니(스테파니 리)와 함께 정하의 강원도 춘천 집을 찾아온다. 고등학교 교사인 정하는 모종의 이유로 학교에 휴직계를 낸 참이다. 동성 연인 지선(옥지영)과 동거 중이기도 하다. 아들에겐 굳이 말한 적 없는 사실들이다.
이미 속이 복잡한데, 한국을 찾은 제니의 부모에게까지 방을 내줘야 하는 상황이 생긴다. 제니 아빠(박지일)는 무례한 언사를 일삼고, 제니 엄마(박지아)는 고상한 말투를 흉내 내지만 뻔뻔한 구석이 있다. 사돈지간이 될 수도 있는 범-가족 모임은 정하에겐 달갑잖고 관객에게는 웃긴 촌극처럼 흘러간다.
장영남은 ‘특별한 동반자가 있는 엄마’라는 설정이 놀랍고 흥미로웠다고 한다. 8일 서울 마포구 한 공간에서 만난 장영남은 “‘우리 엄마가 어느 날 문득 그런 비밀을 털어 놓는다면?’ 생각해 보니 어렵기도 궁금하기도 하더라”며 “그동안 엄마 역할을 많이 했지만, 이 엄마는 새로운 독립적인 인격체로서 궁금했다”고 출연 이유를 밝혔다.
캐릭터를 준비하며 지선 역을 맡은 배우 옥지영과 대화를 많이 나눴다고 한다. 대본에 쓰이지 않은 두 연인의 이야기를 상상하며 빈칸을 채워나갔다. 촬영하면서는 지선을 “‘여자’라기보다 친구이자 애인, 남이지만 가족 이상으로 많은 걸 소통하는 사람”으로서 바라보며 사랑을 연기했다.
직접적인 애정씬은 없지만, 영화 초반 제니가 선물한 속옷을 보여주며 지선과 단둘이 방에서 알콩달콩 하는 장면이 있다. 장영남의 제안으로 추가된 장면이라고 한다. 그는 “지선 앞에서 정하가 애교를 부리는 등 무장해제된 장면이 있었으면 했다”고 했다. 아들의 앞에선 잔소리를 안 하려고 기를 쓰다가 쓴소리를 뱉는 엄마의 모습, 예비 사돈의 추태 앞에선 애써 미소짓는 사회인의 얼굴을 하는 정하는 지선과의 이 장면에서 유일하게 편안해 보인다.
정하의 시점으로 진행되는 <비밀일 수밖에>에서 코믹한 소동은 다른 인물들의 몫이다. 장영남은 관찰자적 주인공 역할이 어렵기도 했다고 말했다. “조연은 짧지만 굵게, 있는 그대로 감정을 다 표현하잖아요. 이건 펼쳐놓을 수 없으니 ‘(내 연기가) 밋밋하지 않나, 뭘 더 할 수 있을까’ 의구심도 많이 들었습니다.”
장영남은 서울예대 연극과를 졸업해 1995년 극단 목화에서 연극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데뷔했다. 장진 감독의 <아는 여자>(2004)를 계기로 매체 연기로 발을 넓혔다. 연기를 시작한 지 햇수로 30년이지만, 그는 연기할 때 늘 고민이 많다고 했다. “저는 제가 트렌디하기보다는 극적인 연기 톤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누군가 제 연기를 보고 ‘현실감이 있다’ 말씀해주시면 힘이 나요. 현실적인 연기에도 접근이 되어 간다, 희망찬 거죠.”
장영남은 지난 10년을 “슬럼프와 함께 걸어가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그는 “어릴 때의 성장통도 있지만, 나이 들어서의 성장통도 있는 것 같다”며 자기계발의 필요성을 매 순간 느낀다고 했다.
“적은 나이가 아니니 몸에 밴 것들이 있잖아요. 무언가를 채우기보다는 버리는 작업을 하고 있어요. 그렇지 않으면 고집이 생기고 자꾸 했던 걸 끌어와서 쓰려고 하거든요. ‘계속 버려야 한다’는 게 연기를 할 때 제 모토인 것 같습니다.”
‘버림’의 일환으로 몸에 익은 것보다는 새로운 것을 해보는 것을 좋아한다. 의학 소재 작품이나 좀비물에 도전해보고 싶은 것도 “지금까지 안 해봐서”다.
최근에는 따뜻한 대본에 끌리곤 한다. 그는 “요즘 사건·사고를 보면 가슴 쓸어내리게 되는 일도 워낙 많지 않나”라며 “그래서인지 따뜻함이 그리워지는 것 같다”고 했다.
<비밀일 수밖에>는 그런 따스함이 있는 영화라고 했다. 장영남은 “각자 비밀이 있는 가족이 나오는데, 이를 무겁게 끌어내는 게 아니라 유쾌하고 때로는 엉뚱한 소동극처럼 풀어낸다. 편안하지만 또 불편한 사람들끼리의 동거가 어떻게 펼쳐질지 함께 웃으며 즐겨주시면 감사하겠다”고 했다.
“2022년 10월29일 토요일 밤, 평범한 비번일이었다. 오랜만에 서울 용산구 이태원 해밀톤 호텔 뒤편 외삼촌 댁을 찾았다. 어린 시절 자주 찾아 골목마다 길을 훤히 알고 있었다. 외삼촌 댁을 나왔을 땐 골목마다 사람이 넘쳐났다.“
지난 4일 서울 강서구 서울소방 특수구조단 119항공대에서 만난 서강윤씨(38)는 그날 밤을 이렇게 기억했다.
서씨는 해밀턴호텔 옆 골목으로 빠져나가려고 했지만 사람이 너무 많았다. 겨우 인파를 뚫고 다른 골목으로 돌아서 나왔다. 휴대전화 배터리가 2%밖에 남지 않았다. 길 건너 카페에 들어가 음료를 시키고 충전을 맡겼다. 그때 길 건너편에 사람들이 모여 웅성거리는 소리가 났다. 사이렌도 어렴풋이 들리자, 서씨도 그 소리를 찾아 뛰어나갔다.
골목에는 수백명이 몰려 밀리고 넘어지면서 서로를 누르고 있었다. 누군가는 이미 넘어져 귀만 보였고, 누군가는 상반신만, 다른 누군가는 인파에 파묻혀 손만 겨우 뻗고 있었다. 날카로운 비명과 묵직한 클럽 음악, 고통스러운 신음과 번쩍이는 조명. 골목의 모든 게 비현실적이었다.
서씨는 응급구조학과를 나와 2015년 소방관이 된 구급대원(현 소방장)이었다. ‘100명을 구하자’는 당찬 마음으로 소방관이 된 그는 당시 8년차 대원이었다. ‘다수 사상자 교육’에 교관으로 참여한 적도 있었다. 중증 환자를 구조해 정상 생활로 돌아오면 주어지는 각종 ‘세이버’ 인증서도 수차례 받았다. 그러나 그에게도 눈앞에 닥친 상황은 낯설기만 했다.
“비번 중인 구급대원입니다!” 현장 지휘관에게 말하고 바로 구조에 참여했다. 출동한 구조대원, 경찰관, 시민들이 함께 급한 대로 넘어진 사람들을 들어봤다. 처음엔 몇 사람을 겨우 빼냈다. 하지만 이후엔 여럿이 달려들어 깔리고 끼인 이들을 당겨보고 들어봐도 꿈쩍하지 않았다.
“살려주세요.” “엄마한테 전화 좀 해주세요.” “제 이름을 기억해주세요.” 여기저기서 절규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조금만 기다리면 구해줄게요. 이따 직접 전화해요.” 서씨는 그들을 안심시키려고 말했다. 한 사람씩 겨우 빼낸 뒤 CPR(심폐소생술)을 하고 병원 이송을 도왔다.
“그런 약속을 하지 말 걸 그랬어요.” 서씨는 ‘구해주겠다’고 한 말을 후회했다. 이날 그 골목에서 158명이 숨졌다. 눈앞에서 의식이 흐려져 가는 모습을 그는 처음부터 지켜봤다.
무력감에 사로잡힌 그에게 한 동료가 ‘비번이니까 일단 들어가라’고 했다. 잊고 온 휴대전화를 챙기고 주차한 차를 찾아 집에 갔다. 입었던 갈색 코트는 어딘가 사라졌다. 니트 상의는 이곳저곳 찢기고 검붉은 얼룩이 묻었다. 휴대전화엔 부재중 전화 기록이 쌓여있었다. 부모님을 안심시키고 씻지도 못한 채 쓰러지듯 누웠고, 다음날 평소처럼 출근했다.
그날 이후 뉴스에는 서씨의 뒷모습이 자주 등장했다. 며칠 후 서울시청 광장에 차려진 시민분향소를 홀로 찾았을 때 그는 ‘살려달라’고 했던 이들과 다시 마주했다.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잠 못 드는 날이 많아졌다.
서씨에게 죽음은 어쩌면 익숙한 것이었다. 사건·사고가 벌어지면 늘 현장에 가는 것이 그의 일이다. 망자와 눈을 맞추고, 손으로 만지며 모든 감각으로 죽음을 느낀다. 가까스로 생명을 이어가던 환자가 끝내 살아나지 못 하는 일도 빈번하다.
“구급대원으로 일하면 심정지 환자 대부분을 구하기 어려워요. 선진국에서도 10% 정도 확률로 소생해요.” 그는 자신의 앞에서 사망한 이들이 이태원 참사를 제외하고도 400명은 될 거라고 했다.
서씨 뿐 아니라 현장에 출동한 소방관과 경찰관들이 모두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런 이들에게도 이태원 참사는 이전에 겪어보지 못한 일이었고 큰 영향을 미쳤다. 이태원 참사 때 현장에 출동해 트라우마를 겪다 최근 스스로 목숨을 끊은 소방관도 있었다.
서씨는 매일 같이 인터넷을 뒤져가며 ‘군중 유체화’(좁은 공간에 많은 사람이 밀집해 개인 의지와 상관없이 물처럼 떠밀려 다니는 현상)와 같은 다중밀집사고를 분석한 논문과 국내외 사례를 닥치는 대로 찾아봤다.
‘무엇을 제대로 못 했을까. 혹시 내가 뭘 잘못한 것은 아닐까. 이렇게 하면 달랐을까.’ 머릿속에 질문인지 자책인지 알 수 없는 물음이 떠나지 않았다. 일단 유체화 현상이 생기고 도미노처럼 넘어지면 구조가 쉽지 않기 때문에 사전 예방이 중요하다는 게 그가 찾은 연구의 공통점이었다.
힘들고 지친 마음이었지만 늘 강해지려고 했다. “더 많은 사람을 살려야겠다”고 생각하면서 다잡았다. 하지만 때론 약해지고 힘들어지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러다가 그는 동료들의 모습도 눈에 들어왔다고 했다.
“같이 일하던 선배님 중에 삼풍백화점이나 성수대교 같은 대형 참사를 경험한 분들이 계셨어요. 늘 밝고 강한 분들인데, 가끔 멍하게 있는 모습을 보면서 ‘트라우마가 오래 가는구나’ 생각이 들었어요.”
비번날 갑자기 참사와 마주한 그처럼, 근무 중 출동해 현장에 있던 동료들이 있었다. “요즘 잘 지내냐고 물어보기가 조심스럽더라고요. 괜히 상처를 떠올리게 할까 봐요.” 서씨도 그날의 경험을 이야기하길 두려워했다.
서씨가 처음으로 그날의 경험을 공개적으로 이야기 한 건 지난해 11월 열린 제15차 아시아태평양 재난의학회 학술대회에서였다. 비슷한 행사에서 몇 차례 강연 제안을 받았지만 거절했다.
“같은 일이 또 벌어지지 않으려면 시스템이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정책적인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라도 현장을 경험한 이들이 이야기해주면 좋을 것 같다는 말을 듣고 해보기로 했어요.”
서씨는 그렇게 세계 각국에서 온 의사·구조대원 등 재난 전문가들 앞에 섰다. 그는 다중밀집사고에 대한 경험을 담은 발표 자료에 “이태원 참사를 기억하라”고 영어로 썼다. “그날은 평소와 같은 평범한 날이었다”며 자신이 “생존자이자 구조자였다”고 소개했다.
오랫동안 준비한 발표는 왈칵 쏟아지는 눈물에 계속 중단됐다. 학회에 참석한 해외 학회 회원들이 그에게 다가와 안아줬다. 비슷한 경험을 해봤다며 함께 울어주기도 했다. “공감하고 위로받으니 힘이 된다는 것을 그때 많이 느꼈다”고 서씨는 말했다.
“잘 지내려고 합니다. 더 많은 사람을 구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의 도움도 필요합니다.” 서씨의 발표 마무리 인사였다.
서씨는 그 다짐을 실천하고 있다. 이태원 참사 이후 그는 오랫동안 준비한 서울소방 특수구조단 119항공대에서 항공구조구급요원으로 일하고 있다. 산과 바다를 헬기로 다니며 사람을 구한다. 번개가 치고 바람이 불고 안개가 끼는 날에도 함께 출동한 동료를 믿고 로프를 붙잡은 채 헬기 아래로 뛰어내린다.
그는 참사로 인한 구조대원들의 트라우마에 깊은 관심을 두게 됐다. “미국의 9·11테러 같은 상황을 경험한 이들도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 트라우마가 발현하는 일이 있어요.” 그는 이태원 참사의 생존자이기도 한 소방관과 경찰관들이 서로 안부를 묻고 자신의 경험에 관해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저보다도 경력이 짧은 후배들도 당시 현장에 있었어요. 그 친구들에게 ‘힘들지. 나도 힘들다’고 하거나, 농담처럼 ‘마지막까지 살아서 더 많이 살려내자’고 해요.” 힘들어하는 이들에겐 구조활동을 잠깐 쉬거나 다른 일을 해도 괜찮다고 조심스럽게 이야기하기도 한다. 후배를 잃는 것보다 그게 나은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여전히 힘들 때가 있지만 생명을 구한 보람으로 살아가려고요. 동료들하고 함께 하면서 정년퇴직하는 게 목표에요.” 그는 무거운 표정으로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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